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지난 10년간 놀라운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접근성, 정밀한 병원 EMR(전자 의무기록) 시스템, 우수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진단, 디지털 치료제, 유전체 분석, 원격 모니터링 등의 분야에서 기술력만 놓고 보면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국내에서 식약처 인증을 받았고, 해외 의료 전시회나 학술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2025년 현재,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등 주요 시장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론칭하려 해도 규제 장벽, 문화적 차이, 의료시스템 구조의 차이에 부딪히며 확장 속도는 매우 느리다.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초창기부터 글로벌을 전제로 사업을 설계하며 빠르게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기술력의 우열 때문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은 기술 외에도 제도, 네트워크, 인증 전략, 사용자 이해, 현지화 역량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헬스케어 분야는 단순한 SaaS나 전자상거래와 달리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 부족해도 시장 진입이 불가능해진다.
이 글에서는 한국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왜 어려움을 겪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적·구조적·전략적 요소들이 장벽으로 작용하는지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국제 규제와 인증 구조의 차이: 국내 인증만으로는 부족하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제품이나 서비스가 해외에 진출하려면, 해당 국가의 규제에 따라 별도의 인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FDA 승인, 유럽에서는 CE 인증, 중동에서는 SFDA(사우디), 아시아에서는 각국 보건부 인증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에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해외에서 자동으로 인정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국내에서 AI 영상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식약처 2등급 의료기기로 등록한 기업도 미국이나 유럽 진출을 위해서는 다시 전임상 검토와 의료기기 등급 재분류, 영어 기반 기술문서 작성, 글로벌 CRO(임상시험기관)와의 협업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이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인증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국내 기준에 맞춰 제품을 완성하고 나서 해외 진출을 고민하기 때문에 구조적 설계나 데이터 수집 방식, 임상 시험 설계 자체가 글로벌 요건과 불일치한다.
이처럼 인증은 단순한 허가 절차가 아니라, 글로벌 진출 전략의 출발점이며, 초기부터 이를 설계하지 않으면 나중에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 시스템과 시장 구조의 이질성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의료비가 통제된 단일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병원 이용이 빠르고 저렴한 의료 소비 환경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국내 스타트업에게는 장점이자 동시에 글로벌 진출 시 가장 큰 ‘적응 실패 요인’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민간보험 중심 의료시장으로, 병원마다 가격이 다르고, 보험사마다 보장 항목도 다르다. 헬스케어 서비스는 단순히 환자에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보험사, 고용주, 약국체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동시에 마케팅하고 수익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단일 유통 구조와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유럽은 공공의료 비중이 크고, 의료데이터 접근이 제한적이며, 윤리적 평가 절차가 길다. 중동은 종교적 요소와 국가 통제 요소가 결합돼 있다. 동남아시아는 의료 인프라가 불균형적이며, 헬스케어는 현지 병원과 정부 허가 없이 단독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이처럼 한국에서 성공한 헬스케어 제품이나 플랫폼이 그대로 해외에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스타트업은 충분히 인지해야 하며, 단순한 번역(localization)을 넘어 의료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꿔서 접근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국내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레퍼런스 부족
글로벌 진출의 또 다른 장벽은 해외 병원, 보험사, 정부기관, 규제 전문가와의 연결망 부족이다.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부터 미국 병원에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거나,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맺는 방식으로 시장 진입을 설계한다. 반면, 한국 스타트업은 국내 시장 안에서 기술을 고도화한 후 ‘해외로 나가보자’는 후속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해외 투자자나 파트너에게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으며, 실제로 FDA나 CE 인증은 있어도 미국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된 사례나 의료진 피드백이 없는 경우 글로벌 바이어는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글로벌 헬스케어 엑셀러레이터, 해외 디지털 헬스 전시회, 국제학회 발표, 다국적 제약사 오픈이노베이션 등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경로’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에 비해 기술력은 있으나 스토리텔링과 임팩트 포지셔닝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글로벌에서 성공 해결을 위한 전략: 초기부터 ‘글로벌 설계’를 전제
한국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글로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단순히 ‘좋은 기술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전제로 설계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먼저, 제품을 설계할 때부터 FDA, CE, HIPAA, GDPR 등 각국 규제 요건에 맞춘 구조로 문서를 정리하고, 초기 임상 시험도 국내외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데이터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국내 병원뿐 아니라 해외 병원과의 공동 임상, 해외 규제기관 컨설팅 경험을 갖춘 전문가 영입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한국어 기반이 아닌 영어 기반 UI/UX와 글로벌 레퍼런스를 중심으로 제품을 다듬는 설계가 필요하다. 국제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거나, 헬스케어 전시회에 출품하고, 글로벌 VC 또는 액셀러레이터의 지원을 받는 활동도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다국적 제약사, 글로벌 보험사, 미국 병원 시스템과의 파트너십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B2C 방식보다는 B2B2C 구조로서 유통과 의료서비스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 스타트업이 헬스케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 기업’에서 ‘의료 생태계 중심 전략 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헬스케어는 제품이 아니라 신뢰와 구조가 만드는 산업임을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진출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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